[HYBE AMERICA] #1 손성득 Executive Creator

K팝 퍼포먼스의 역사를 만든 인물에서, 이제는 미국 본토에서 K팝 시스템의 현지화를 이끄는 개척자로.

[HYBE AMERICA] #1 손성득 Executive Creator

K팝 퍼포먼스의 역사를 만든 인물에서, 이제는 미국 본토에서 K팝 시스템의 현지화를 이끄는 개척자로. 그룹 '캣츠아이(KATSEYE)'의 성공적인 데뷔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는  손성득 하이브 아메리카 총괄 크리에이터(Executive Creator)를 만나 그의 도전과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총괄 크리에이터로 합류하신 지 몇 년 차가 되셨나요? 미국 현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정확히 2022년도에 합류했으니 올해로 4년 차네요. 솔직히 힘든 점이 많았고 지금도 힘듭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며 일하다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언어의 장벽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문화부터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도 어려웠고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적응했고, 이제는 그 다름을 즐기며 즐겁고 감사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이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총괄 크리에이터라는 직책을 처음 제안받으셨을 때 어떤 심정이셨나요?

부담이 많이 됐죠. 저에게 굉장히 큰 도전이었습니다. 걱정도 많이 됐고요. 제가 계속 일해왔던 환경이 아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직책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정말 큰 도전이었어요. 퍼포먼스 디렉터로서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들었던 것과는 달리, 총괄 크리에이터는 음악, 비주얼, 마케팅 등 프로젝트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며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니까요. 그 책임의 무게가 실로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과 책임감, 일의 영역은 항상 제가 꿈꿔왔던 지점이자 목표였기 때문에,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안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수락했습니다.

퍼포먼스 디렉터를 넘어 이제는 미국 시장에서 K팝의 시스템을 개척하고 계십니다. 하이브 아메리카와 게펜 레코드가 함께한 캣츠아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총괄 크리에이터로서 어떤 역할을 맡으셨나요?

처음 제가 합류했을 때는 사실상 시스템이라는 게 거의 없었어요.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습니다. 캣츠아이라는 프로젝트는 하이브의 K팝 시스템을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는 큰 목표 아래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합류했습니다. T&D(Training & Development)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아티스트는 어떤 프로세스로 만들어야 하는지, 캐스팅 기준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등 아주 기본적인 부분부터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했죠. 기존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와 시장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시스템을 재창조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현지 상황에 맞춰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것부터가 제 역할의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시장에는 T&D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을 텐데요. 현지 스태프들에게 이 시스템을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하셨나요?

다행히 저희에겐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좋은 레퍼런스와 성공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고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성공 이면에 있는 철학과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사례들을 토대로 왜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지, 체계적인 트레이닝이 어떻게 아티스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오랜 생명력을 갖게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브리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재능 있는 아티스트를 왜 틀에 가두려 하느냐'는 식의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죠. 하지만 결국 그들도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나갔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길을 잡아주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오해를 풀어주는 조언자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의 연습생 시스템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합니다. 총괄님께서는 T&D가 '어디에나 있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이제 T&D의 개념도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과거처럼 정해진 틀에 아티스트를 맞추는 방식이 아닙니다. 요즘의 T&D는 아티스트가 가진 고유한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꽃피울 수 있도록 물과 거름을 주는 '정원사'의 역할에 가깝습니다. 그 안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깊은 존중과 자율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죠.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가 겪을 수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돌보고 건강한 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멘탈 케어까지 포함됩니다.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전인격적으로 지원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T&D 시스템입니다.

다큐멘터리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를 보면 참가자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대신 각자의 강점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이끌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 와서 직접 부딪히며 배운 점이죠. "너는 틀렸으니 이렇게 해야 해"가 아니라, "~씨는 이렇게 다르구나. 그 다름이 ~씨의 특별함이 될 수 있겠다"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형화된 춤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참가자가 있을 수 있지만, 저희는 그것을 그 참가자만의 '다른 표현 방식'으로 보고, 어떻게 하면 그 개성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배경을 알아야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이 관점은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 때도, 지금의 캣츠아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저에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겁니다.

성공적으로 데뷔한 캣츠아이는 어떤 그룹으로 만들고 싶으셨나요?

솔직히 "엄청난 팀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습니다. 가장 큰 목표는 이 새로운 시스템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캣츠아이가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나의 팀으로 보이는 것'이었어요. 서구권 팝 그룹의 역사를 보면, 뛰어난 개인이 주목받다가 결국 솔로 활동으로 이어지며 팀이 해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희는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습니다. 멤버들의 국적, 인종, 문화적 배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팀으로 묶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음악이든, 퍼포먼스든, 비주얼이든 이들이 하나의 팀으로 단단하게 뭉쳐 시너지를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캣츠아이의 퍼포먼스는 시원시원한 동작이 돋보이는 'Debut'나 'Gnarly' 같은 곡과, 손끝 디테일이 살아있는 'Touch'처럼 상반된 매력을 모두 보여줍니다. 퍼포먼스의 방향성은 어떻게 기획하고 계신가요?

영역을 만들지 않는 것이 방향성입니다. 캣츠아이의 팀 컬러를 한 가지로 단정 짓는 순간, 그 틀에 갇히게 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글로벌 걸그룹이고, '다양성'이 가장 큰 무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퍼포먼스 역시 특정 스타일에 한정하지 않고 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며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게 목표입니다. 힙합, 라틴, 컨템퍼러리 댄스 등 다양한 장르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때로는 뮤지컬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사가 담긴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Debut'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군무를, 'Touch'에서는 아기자기한 매력을, 'Gnarly'에서는 무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 과감함을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다채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갈 계획입니다.

특히 'Gnarly'는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무대를 보면 멤버들이 정말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안무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Gnarly'는 처음부터 무대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던 곡입니다. 멤버들이 가진 끼와 재능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했어요. 정해진 안무를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 과정에서 멤버들이 직접 제스처나 표정, 동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도록 독려했습니다.”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세요"라고요. 안무 역시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활개 치고 다니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멤버들이 스스로 즐기고 행복해야 최고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Gnarly'는 멤버들의 창의성과 에너지가 더해져 저희의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좋은 사례입니다.

올해 시카고에서의 롤라팔루자 무대가 큰 화제였습니다. 특히 ‘Gabriela’의 스페셜 스테이지는 엄청난 화제를 모았죠.

롤라팔루자라는 큰 무대에 서는 만큼, 저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각인을 시켜줘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Gabriela’는 라틴 특유의 매력을 쇼적으로 풀어내기에 최적의 곡이었죠. 단순히 안무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한 편의 쇼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의상 체인지 같은 극적인 효과와, 라틴계 멤버인 다니엘라의 DNA를 십분 활용한 탱고 페어 안무 등 다이내믹하고 버라이어티한 무대를 구성했습니다. 멤버들도 이 무대를 준비하면서 아티스트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무대를 계기로 멤버들이 자신감과 여유를 얻으며 더 큰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아티스트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캣츠아이가 현재 미국 시장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국 '다양성'과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멤버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룬 모습은, 오늘날의 다원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사회에, 캣츠아이처럼 다양한 멤버로 구성된 그룹이 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시대에 꼭 맞는 아티스트로서의 등장이 반가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오랫동안 미국 시장 내 걸그룹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그런 니즈가 있는 상황에서 K팝 시스템의 강점인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와 팬들과의 긴밀한 소통 방식이 더해져 캣츠아이의 정체성과 콘텐츠가 대중에게 잘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K팝의 역사와 함께해오신 분으로서, 미국에서 총괄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며 어떤 감회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부산 방파제에서 춤추던 아이가 서울로 와 좋은 회사를 만나고, 훌륭한 아티스트와 여정을 함께하고, 이제는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 모든 과정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저의 노력도 있었지만, 좋은 동료들과 아티스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특히 아무런 레퍼런스가 없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매일 새롭게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미국 동료들과 일하며 제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기도 하고, 전혀 다른 접근 방식에 놀라기도 합니다. 그 배움이 저에게 신선한 자극과 힘을 주고,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원동력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업적인 성과를 넘어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미국에 올 때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왔습니다. 돌아갈 생각을 하면 이 도전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동안의 제 이름 앞에는 항상 'K팝', 'BTS', '하이브' 같은 수식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꼬리표입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이곳에서, 저 멀리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사람이 국적이나 배경을 떠나 창작자로서, 크리에이터로서 콘텐츠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정말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것이 저의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제 도전이 훗날 다른 한국의 창작자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