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뜻돌 인터뷰
이제 내가 누군지 좀 알 것 같아, 활동을 좀 시작해야겠어.
김뜻돌은 자신의 앨범들을 하루의 시간대로 설명한다. [코발트]는 밤, [천사 인터뷰]는 아침, 그리고 새 EP [하나에게]는 대낮이다. 불면과 방황의 20대를 지나 "여전히 나는 살아있네" 하고 아침 해를 본 뒤, 비로소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이 [하나에게.]에 담겨 있다.
[하나에게.]는 '하나'라는 인물에게 부치는 러브레터다. 하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누구나가 될 수 있다. 김뜻돌 그 자신이자 전지전능한 신이고, 모두이기도 하다. 텅 비어 있는 존재다. 보이지 않는 천사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옮겼던 [천사 인터뷰]에 이어, 이번 앨범은 인간 김뜻돌로서 한국에 발을 딛고 있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진솔하게 풀어낸 기록이다.
제이 솜(Jay Som)과 함께한 LA 작업, 채플 론(Chappell Roan)의 드러머 매든 클래스가 참여한 세션, 쇼챔피언 무대에서 용기 있게 갈긴 미공개곡 '서울역'까지. 발매를 앞둔 김뜻돌을 만났다. 앨범 커버를 고민 중이라는 그와 함께 바이닐 진열대를 한 바퀴 돌고 나서였다.

신보 [하나에게.]가 어떤 앨범인지 소개해 달라.
김뜻돌 말 그대로 '하나'라는 인물에게 쓰는 러브레터 같은 앨범이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게 사랑 노래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는 하나라는 사람에게 짝사랑처럼 쓴 곡도 있고, 너를 알게 되고 내 우주와 세상이 바뀌었다고 선언하는 곡도 있다. 되게 인간적인 앨범이다. 정규 2집 [천사 인터뷰]가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영감과 메시지를 받아서 쓴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인간 김뜻돌로서, 한국에 사는 한 여자 사람의 이야기로서 이 땅에 발을 딛고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왜 이름이 '하나'인가. '하나님'인가 싶기도 했고, 반대로 '하… 나에게'로도 읽혔다.
김뜻돌 두 가지 의미를 다 담고 있는 이름이다. 하나는 실제로 있는 이름이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많이 쓴다. 그런데 나에게 하나는 'Oneness'라는 뜻이다. 영어로도 뭔가 '하나'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어렵게 설명하고 싶지가 않더라.
"그냥 하나라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은 너도 알고 너도 알고, 너희 고조할아버지도 알고, 미래에 태어날 너의 자손도 알게 될 그런 존재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이기도 하고, 신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는, 그런 텅 빈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앨범을 3부작이라고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코발트]는 밤, [천사 인터뷰]는 아침, [하나에게.]는 대낮.
김뜻돌 20대는 밤을 많이 샜다. 밤 하면 네온사인과 방황의 시간, 불면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코발트]는 그 불면의 시간 동안 만들어낸 청춘의 외침 같은 앨범이었다. [천사 인터뷰]는 그 시간들을 꾸역꾸역 지나와 밤을 새우고 새벽과 아침이 됐을 때 "어, 뭔가 해가 뜨고 여전히 나는 살아있네" 하고 자기 존재의 희망을 보는, 아침 해를 보는 듯한 앨범이었다. 이번 [하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또 지나서 "이제 내가 누군지 좀 알 것 같아, 내가 뭘 할 줄 알 것 같아, 활동을 좀 시작해야겠어" 하고 깨어나서 움직이는 시간이다.
앨범 소개에서 "낡은 믿음이 부서지면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는 설명을 봤다.
김뜻돌 뮤지션들은 인고의 시간을 늘 겪는 것 같다. 스스로를 괴롭게 하면서 얻는 영감도 크고, 그 고통 속에 음악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나도 음악을 해오면서 스스로를 많이 괴롭게 했던 것 같다. 어떤 게 좋은 음악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멋있을 수 있는지 따위 고민을 하면서, 내가 아닌 옷도 입어봤다가 다시 벗고 또 이 옷을 입어봤다가 하는 그 시간들이 나름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공연을 하고 나서도 "나 오늘 정말 잘한 걸까", 앨범을 내고 나서도 "앞으로 계속 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을까" 같은 고민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이제는 명상을 통해 내면을 좀 더 돌아보게 되면서 이 모든 믿음들이 내가 원해서 갖게 된 게 아니고 주입받은 믿음들이구나 싶더라. 이를테면 사랑받아야 살 수 있다든가. 직업적인 고민들도 심연에 있는 아주 오래된 믿음에 근거한 것이 많았다. 그래서 그 믿음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하나 내면으로 들어가 꺼내 봤다. "내가 왜 이렇게 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왜 이런 음악을 해야 오래 갈 수 있다 생각하지?", "왜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왜 생각하고 있지?"
그런 믿음들을 하나씩 톺아보면서 "아, 이건 나한테 필요 없는 믿음이었구나", "세상이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주입된 것들이구나"를 깨부수는 시간들이었다. 그게 나에게는 대낮의 시간처럼, 어둡고 구석진 부분들을 밝게 비추면서 필요 없던 믿음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이었고, 그 와중에 곡이 그렇게 나왔다.

'서울역'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쇼챔피언에서 미공개곡을 그대로, 표현을 빌리자면 '갈겨버린' 곡이다.
김뜻돌 많은 분들이 서울역에 대한 감상이 있겠지만, 나에게 서울역은 서울의 모든 기운을 압축해 놓은 공간이다. 서울에 산 지 10년 정도 됐는데도 서울역에 가면 "아, 이곳이 진짜 서울이구나"를 뼈저리게 느낀다.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딱 떴는데 "오늘은 지리산에 가야겠다" 싶어서 구례역 기차표를 끊고 1분 남기고 겨우 타서 혼자 갔다. 구례의 어떤 절에서 4박 5일 있다가 밤늦게 막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출발했을 때의 나와 도착했을 때의 내가 너무 다른 거다. 서울이 너무 버리고 떠나고 싶은 도시였는데, 아무도 없는 스산한 플랫폼과 거기 계시는 홈리스 분들과 고양이들을 보면서, 서울이 되게 유령 같은 도시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나를 품어준 곳이란 말이다.
우리 모두 이 유령 같은 곳에 살고 있지만 서울은 또 너무 찬란하게 아름다운 장면이 많은 곳이고, 그건 오늘 내가 떨어진 이 기차역처럼 계속 사라지는 공간이라고 느꼈다. 서울역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지 않나. 여행을 떠나는 순간들도 돌이켜 보면 다 찰나였고,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손, 그것뿐이고 지금 듣는 노래뿐인 것 같다. 이 감정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찰나구나. 그런데 그게 지나가서 너무 아름답다. 되게 외로운데 외로워서 신나는 그 고독함. 그래서 서울역에 가는 많은 분들이 진짜 기차에서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요한 건, 집착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래서 오히려 너무 다행이다" 하는 후련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다음 곡 '1+1=0'은 제이 솜(Jay Som)과 함께한 곡이다. LA 작업은 어땠나.
김뜻돌 미국 뮤지션과 일을 하는 게 생각 이상으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영어로 모든 소통을 해야 하니 걱정이 됐지만, 워낙 좋아하던 뮤지션이기도 했고 그녀의 비법 소스 같은 것도 훔쳐보고, 현지 드러머와도 작업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드러머는 매든 클래스(Madden Klass)라는 친구인데 현재 되게 잘 나가는 드러머로 알고 있다. 채플 론(Chappell Roan)의 드러머이기도 하다. 드러머를 어떻게 구할까 고민하던 중에 제이 솜이 "나 아는 드러머 있는데 오늘 LA 도착한대"라고 하더라. "너 어디야?" 했더니 "나 방금 미국 떨어졌어" 해서, "그러면 오늘 우리 집에 와라" 해서 투어 끝나고 도착한 그날 바로 드럼을 쳤다. 확실히 달랐다. 월드클래스의 손맛을 느꼈다. 굉장히 젊고 어린 드러머였는데, 왜 채플 론이 이 친구를 간택했는지 알겠더라. 계속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의 싱어송라이터들과 작업해보고 싶다는 계기를 더 만들어 준 것 같다.
'1+1=0'은 어떤 메시지를 담은 곡인가.
김뜻돌 "나 좀 상식 깼음", 또는 "깨고 싶음"이라는 걸 담은 제목이다. 가사를 보면 네가 나를 왜 좋아하는지 증명을 해달라고 한다. '1+1이 2인 것처럼' 나한테 그렇게 보이도록 증명해줘,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나여야만 하는지.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면, 또는 사랑할 때 논리적인 근거를 듣고 납득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인간이면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런데 사랑을 하면 할수록 "너 나를 왜 좋아해?" 또는 "너 그 뮤지션을 왜 좋아해?" 하면 "그냥"이라는 대답이 되게 많이 들리는 것 같다. 그게 이유를 대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진짜 그냥 좋은 거더라.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는 명백한 논리나 근거를 댈 수 없는 뭔가가 늘 있고, 더 큰 사랑은 무한한 개념의 영(零)처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늘 상식 밖의 더 큰 뭔가를 가져다준다. "이 사랑이 나의 어떤 믿음을 부쉈어"라고 하는 노래다.
뮤직비디오도 자유로운 바이브가 두드러졌다.
김뜻돌 LA에서 처음 작업하면서 있었던 로드트립, 작업기의 자유로운 느낌을 담고 싶었다. 그냥 사람들이 "LA의 김뜻돌"을 편안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짧은 브이로그처럼 편안하게 봐줬으면 좋겠다에 가까웠다. 그리고 편집 중인 '하나에게' 뮤직비디오에는 뮤지션 친구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다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고 사실은 깊은 무의식에서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소소하고 꾸밈없는 시골 소녀 같은 자유로운 모습을 앞으로 계속 꺼내고 싶을 것 같다.

'여름 여름 여름'은 제목에 여름을 세 번 넣었다.
김뜻돌 여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고, 겨울을 특히 싫어해서 겨울이 되면 여름이 있는 곳으로 도망치곤 한다. 작년 겨울에 여름을 쫓아 갔을 때 신선함, 스스로 다시 10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름은 나를 늘 살짝 고등학생으로 만드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의 느낌으로 뭔가 다 리셋되는 사고를 하게 된다. 그 고등학생의 마음으로 첫사랑을,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을 만났을 때를 상상하면서 쓴 곡이다.
'행복은 심각한 얼굴의 천사'는 제목부터 강렬하다.
김뜻돌 그 글을 모딜리아니의 전시를 열고 잇는 미술관에서 딱 봤는데 머릿속에서 한 달간 떠나지가 않았다. 내가 천사를 좋아하지 않나. 왜 웃는 천사가 아니고 심각한 얼굴의 천사일까. 나에게도 천사의 이미지는 마냥 행복하고 악마와 대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다. 어려운 과제도 던져주고, 때로는 아픈 일을 겪고 있을 때 도와주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는 천사이기도 하다.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이 그냥 멀리서 봐야 한다면, 나는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고 느낀다. 그럴 때 대부분의 인간은 무기력함을 느끼거나 아픔을 느끼는데, 인고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또 행복이 있는 것 같더라. 행복은 불가결하게 그 고통을 겪어내는 시간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해석했다. '멸망은 웃으며 내게 손짓하지만' 같은 가사가 나오는데, 내가 갖고 있던 낡은 믿음 중 하나도 '행복은 좋은 것, 불행은 나쁜 것'이었다. 좋길 바라면서 이 인고의 시간을 미워하거나 싫어했던 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천사들의 입장에서는 당신을 지켜보고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고, 이 시간 자체가 어찌 보면 행복을 보증하고 있는 시간이다.
행복이 결과가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는 뜻이겠다. 이 트랙에서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로 녹아들어 있는 점이 특히 좋았다.
김뜻돌 정확하다. (웃음) 일본어로도 불렀는데, 원래 함께하려던 가창이 아쉽게 무산됐다. 또 다른 기회가 된다면 이후에 그런 기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작업물을 거치며 보컬 터치에도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달라진 지점이 있나.
김뜻돌 내 안에 되게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스스로를 약간 앵무새라고도 생각할 때가 있다. 이 다섯 트랙 안에 여러 목소리가 다 담긴 것 같다. 어떤 것들은 [코발트] 앨범처럼 덤덤하고 터프하게 부르기도 하고, '하나에게'는 '손님별'이나 [천사 인터뷰]에 가까운 몽환적인 느낌이 있고, '행복은 심각한 얼굴의 천사'에서는 진짜 오두막에서 부르는 것처럼 편안하게 불렀다. '여름 여름 여름'은 팝 가수처럼 불러보려고도 했다. 그냥 그 곡에 어울리는 내 목소리를 담은 것 같다.
이번 앨범은 김뜻돌의 20대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20대의 김뜻돌은 어땠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김뜻돌 거의 원석이었던 것 같다. 좌충우돌하는. 그냥 열심히 구르다 보니 약간 깎이고 마모됐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돌이 계속 구르면 해변가의 돌처럼 맨들맨들해지지 않나.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 거기까지 가면 죽음이고. 어쨌든 스스로도 돌이라고는 생각했는데, 안 구르는 돌이 있고 계속 구르는 돌이 있다고 치면 나는 계속 계곡에 구르는 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한 인터뷰에서 "10년 전의 나에게는 '손님별'을, 10년 후의 나에게는 '코발트'를 들려주고 싶다"고 한 것을 봤다. 그럼 40대의 김뜻돌에게는 [하나에게.] 중 어떤 노래를 들려주고 싶나.
김뜻돌 '하나에게'일 것 같다. 스스로도 만들면서 살짝 눈물이 고이는 노래들이 있는데, 이 노래는 내가 쓴 게 아니고 어디서 내림받았다는 느낌이 있다. 이 노래를 쓰면서 나한테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들을 떠올렸다. "어, 내가 어떻게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났지?" 하는 장면들이 스쳐가면서 눈물 나게 감사했던 것 같다. 작곡을 하면서. 그래서 이 곡의 애정이 되게 크고, 10년 뒤의 나에게도 그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또 "그때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라고도 말해보고 싶다.
끝으로 [하나에게]를 듣고 있을 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한다.
김뜻돌 여러분들의 '하나'에게 들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치는 곡이기도 하고, 앨범을 듣는 순간, 쓸쓸하게 서울역에 도착했던 순간이든 다양한 삶의 순간이든, 이 앨범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조금이라도 대낮처럼 밝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여러분들의 '하나'에게 이 EP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