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그래미 출품 거부를 두고

우려스럽게도 현재 논의는 고립을 자초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BTS의 그래미 출품 거부를 두고

BTS의 그래미 출품 거부 이후 많은 질문을 받았다. 하나같이 음악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미는 아시아 음악을 모호하게 정의했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최우수 아시아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하며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자격 요건을 붙였다. 6년 전 이 조직은 '월드 뮤직'을 '글로벌 뮤직'으로 바꾸며 식민주의와 비미국적이라는 함의로부터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다시 언어를 자격의 잣대로 삼았다. 

2025년 신규 회원 중 아시아·태평양계는 5%에 그친다. 부문을 만든 것이 잘못이 아니다. 심사할 사람이 없는 채로 이름부터 정한 것이 잘못이다. 지난 2년간 시청자 250만 명이 빠진 시상식의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BTS는 지금까지 그래미를 간절히 원했다. 2019년 RM은 갑자기 전곡 영어로 부른다면 그건 BTS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빌보드 핫 100과 그래미 지명이 목표라고 했다. 그 결과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흥겨운 댄스 팝 ‘Dynamite’와 ‘Butter’다. 덕분에 BTS는 총 다섯 번 그래미에 후보로 올랐다.

[ARIRANG]은 BTS가 이벤트성 싱글과 협업 외 처음 완전체 정규 앨범이다. 본격적으로 승부를 걸 작품이었다. 흥미롭게도 RM은 2월 인터뷰에서 앨범을 그래미에 출품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앨범은 한국을 다루는 방식과 기표를 나열하며 많은 가사를 영어로 채웠다. 제작 다큐멘터리에서 드러나듯 그룹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와 이익 집단의 요구 속에 멤버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혼란으로 가득하다. 전 곡 영어 가사인 ‘Swim’과 ‘Normal’은 애초에 그들이 출품 거부한 부문에 낼 수 없는 노래다. 

BTS의 선언은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입후보 및 수상 가능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여론을 환기하고 시상식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라는 명분은 매력적이고 진심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를 해석하는 말들이 너무 과하다. 트로피를 받기 위해 수많은 캠페인과 행사가 일어나는 곳이 레코딩 아카데미다. 그중에도 회원들의 주 평가 기준은 음악적 성취다. 앨범을 얼마만큼 팔았고, 투어에서 이정도 매출을 거뒀다고 상을 주는 곳이 아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처럼 팬 투표로 결정되지도 않는다. 시청률을 위해 BTS를 무대에 세웠다는 비판은 유효해도, 그것이 BTS가 당연히 상을 가져가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서구 사회와의 대결, 인종 차별 극복의 시선은 편리하고 자랑스럽다. 대부분 틀렸다. 배드 버니가 스페인어 가사로만 채운 작품으로 장르 부문과 본상 부문을 석권하며 역사를 쓴 게 불과 몇개월 전이다. K팝 최초의 그래미 트로피를 가져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Golden’도 올해다. 

그래미를 목표로 삼았던 포부, 다섯 번의 후보 지명, 세 번의 시상식 공연의 역사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이브는 전사 차원의 보이콧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베스트 아시아 팝 퍼포먼스 후보에 다른 아시아 가수가 혹은 K팝 가수가 선다면 그때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래미를 간절히 원하던 모두가 그래미를 한순간에 인종차별적이고 부패한 시상식이라 손가락질하고 있다. 분명 시상식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그렇다고 권위와 가치가 무너진 건 아니다.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음악가들을 조명하고 발굴하며, 상이 아니면 평생 그 음악을 듣지 않을 이들에게 좋은 작품을 권유하는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미를 무시하고 거부하면 남는 시상식이 무엇인가. 차트로 순위를 매기는 시상식, 팬 투표로 뽑는 시상식, 수상이 확정되지 않으면 참가하지도 않는 시상식의 범람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래미의 잘못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를 냉철하게 지적하며 그들이 급변하는 세계 시장의 음악 흐름을 포착하고 조명할 수 있는 건설적인 의견 교류가 필요하다. BTS의 선언도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의 발언은 트로피와 성적에 매몰되지 않고 진실한 음악을 선보여야 한다는 그룹 스스로에 대한 경고로 돌아온다.

우려스럽게도 현재 논의는 고립을 자초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음악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라는 선언이 무색하게도 아무도 이 앨범이 어떤 음악인지, 아시안 팝이 어떤 음악이 되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 질문이 없으면 달라지는 건 없다. 부문이 사라지든, 그래미를 영원히 가지 않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