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킴(김예림) [Exit to Nowhere]

어떤 이름으로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음악가의 궤도

림킴(김예림) [Exit to Nowhere]

마지막으로 림킴을 만났을 때 예림은 자연인과 캐릭터 사이를 유동적으로 오가는 아티스트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패기를 담아 시퍼렇게 벼려낸 [GENERASIAN]의 여성 서사, 이를 수행하는 림 킴이라는 인물은 선명했다. 반면 자연스러운 김예림은 누구일까.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슈퍼스타 K3’으로 처음 이름을 알린 투개월 시절이 그가 제일 편하게 느끼는 모습일까.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로의 발걸음을 떼며 펼쳤던 솔로 팝 히트곡과 첫 정규 앨범 [Goodbye 20]의 청춘 기록이 그의 가장 깊은 이야기였을까.

솔직하고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포부와 함께 자신만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예림의 대답은 확실함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섬세한 그의 목소리처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호흡을 가다듬겠다는 조용한 다짐이라 생각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Exit to Nowhere]에서 림킴은 편안하게 숨을 쉬고 있다. 앨범 단위로는 [GENERASIAN] 이후 7년, 정규 앨범으로는 13년 만의 작품은 림킴과 김예림을 온화하게 유화하며 음악가의 목소리와 정체성에 활기를 부여한다. 프로듀서 드레스(dress)와 글로잉독(glowingdog)이 펼쳐 놓은 팔레트 위에서 붓을 든 림킴은 입체적이었던 자신의 서사를 몽환적이고도 유려하게 그려낸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서사를 드러낸다는 예고에서 짐작할 수 있었듯 [GENERASIAN]과는 다른 스타일의 음반이다. 이질감은 없다. 형식과 실질, 함축과 표현의 균형이 조화로운 덕이다.

시간에 맞춰 앨범을 소개하자면 이 작품은 과거로부터 탈출해 확실한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의 빛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작의 ‘MINJOKYO (EXIT)’의 출구로부터 넓은 공간감의 새로운 ‘Exit’를 통해 다시금 카오스로 향하는 림킴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목소리와 사람들에 조금은 퉁명스럽게, 또는 거칠게 ‘인사하세요 (INSA)’에서 손을 흔든다. 스튜어트 프라이스와 마돈나의 협업을 연상케 하는 복고적인 하우스 비트 위에서 풀어내는 문장은 도발적이고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서바이벌 오디션부터 메인스트림에서의 팝스타로, 림킴으로 칼을 휘두르던 언더그라운드 시기부터 지금까지 예림은 수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다양한 공간에 적응하는 훈련을 경험했다. 더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자기 확신이자, 타인에게 외치는 선언이다.

[Exit to Nowhere]의 방향은 자연히 일렉트로닉이나 힙합이 아니라 팝을 향해 나아간다. 장르 음악의 초강세와 대중 개념의 실종 가운데 테일러 스위프트를 위시한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올리비아 로드리고, 사브리나 카펜터 등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명맥을 잇고 있는, 흔히 ‘팝’이라 일컫는 장르의 실천자가 유독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케이팝이 모든 화제와 창작의 방식을 가져가기도 하거니와, 체계적인 제작 팀과 아티스트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선보여야 하는 까닭이다.

림킴은 그 어려운 과제를 손쉽게 풀어내고 있다. ‘Never Gonna Be Alone’과 ‘21’이 확실한 증거다. 앨범의 한가운데서 가장 통속적인 팝 사운드를 지향하는 이 두 곡은 단호한 거부라는 이성과 과거를 반추하는 감성의 대비를 이룬다. 모두가 혼자를 거부하는 애처로운 모노크롬의 세계를 등지고 홀로 떠나가는 단독자로의 결정 이후 [Goodbye 20]의 그다음을 추억으로 간직하는 림킴의 입체적인 면모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해상도 높은 팝은 내일로 향하는 문도 열어준다. 느리지만 확실히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겠다는 ‘Limbo’에서는 테임 임팔라의 근작 [Deadbeat]를 연상케 하는 사이키델릭 팝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출발해 웅장한 사운드 스케이프 확장을 실현하며 지금 여기 발 딛고 서 있노라 노래하는 ‘Now Here’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올리비아 딘의 스타일을 겹쳤다. ‘아무 데도 아닌 곳(Nowhere)’가 ‘바로 지금(Now Here)’ 여기로 펼쳐지는 순간을 고감도의 멜로디와 치밀한 프로덕션으로 실현했다.

종착지에서도 작품은 영리하게 완성을 완결로 매듭지으려 하지 않는다. ‘Through The Glow’의 광채를 찾아 떠나는 림킴의 곁에는 고양감 있는 알앤비 팝을 온화하게 노래하는 윤상이 있다. 가요계 대선배이자 인생의 어른에게 현재 나는 이런 음악을 만들고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앞으로 어떻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고 노래하는 광경이 림킴의 새 앨범을 나서는 길에 따사롭게 그려진다.

Universal Music Group Korea

모처럼 한국 음악계에 등장한 좋은 팝 앨범이다. 정규 앨범으로는 적은 곡 수와 짧은 러닝 타임이 보다 깊은 림킴의 서사를 상상하게 만드나, 더욱 치밀한 밀도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쇼케이스에서 밝힌 대로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최적의 동료들과 적합한 기획과 서사를 만들어 설득력 있는 음악을 완성했다는 점이 최고의 성과다.

종종 나는 림킴과 김예림 둘 중 어떤 이름으로 그를 불러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it to Nowhere]는 어떤 이름으로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음악가의 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