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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ower Station : Review, Column, Interview, etc

캐롤라인 폴라첵 스파이럴링 투어 도쿄 (Caroline Polachek Spiraling Tour Tokyo)

캐롤라인이여! 너로 변신하고 싶다.

김도헌
김도헌
- 5분 걸림

Photo: Do Heon Kim

캐롤라인 폴라첵. 이름도 낯설고, 퍼포먼스도 범상치 않은 이 가수는 올해 팝 시장에서 가장 많이 호명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를 보러 도쿄까지 날아갔다.

세계 각지에서 그의 비범한 솔로 퍼포먼스를 목격한 이들은 자연스레 케이트 부시를 떠올린다. 전위적이다가도 대단히 대중적이고, 어떨 때는 민속의 흥까지 체득하는 캐롤라인의 음악과 자연스러운 무대 동작은 확실히 위대한 아일랜드의 대선배와 닮아 보인다. 많은 이들이 뉴욕에서 태어나 코네티컷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를 영국인으로 착각하는 이유다. 그러나 캐롤라인의 아방가르드는 아일랜드 핏줄에 흐르는 본능을 과감히 옮긴 케이트 부시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케이트 부시가 걷잡을 수 없는 야성의 동물이라면 캐롤라인 폴라첵은 극도로 절제하는 법을 혹독하게 단련된 음악 사냥꾼이다. 올해 솔로 앨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욕망이여, 너로 변신하기를 원해(Desire, I Want To Turn Into You)’이며, 커버 속 캐롤라인은 지하철 바닥을 기어다니며 먹잇감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도의 기만술을 펼치고 있다.

뉴욕에서 결성한 인디 실험체 체어리프트가 애플 광고 덕에 뜻하지 않은 성공을 겪으며 혼란의 10년을 겪는 동안 그는 유럽으로 거처를 옮겨 전자 음악을 학습했다. 동시에 합창과 오페라를 익히고, 현대 무용가들에게 소리의 흐름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가 키치와 기괴함, 감각 과잉을 부추기는 하이퍼팝의 명가 PC 뮤직에 적을 둔 결정도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간다. 대규모 오케스트라보다 미니멀한 밴드 구성이, 다 함께 꾸는 꿈보다 혼자 상상했던 예술 세계가 그의 지향이다. 그래서 1970년대 베를린 이전의 보위처럼 캐롤라인의 음악도 플라스틱 하다.

기타, 드럼, 베이스, 그리고 캐롤라인 폴라첵이 무대에 올라갔다. 크게 팔을 휘두르며 나지막이 랩을 뱉던 그가 이내 벨칸토 창법을 연상케 하는 초고음을 쏘아낸다. 주목할 지점은 마이크의 위치다. 캐롤라인은 큰 소리를 내야 할 때 마이크를 입가에서 들어 올려 머리 위로 멀리 떨어트린다. 긴장감 넘치는 밴시의 노래가 전자 악기 없는 밴드에 신시사이저의 잔향을 선사한다. 뛰어난 보컬임이 분명하지만, 음이 크지 않은 이유다. 무대에 입체감을 선사하지만, 선명한 목소리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일장일단이 있다.

그 소리의 공백이 닿기도 전에, 캐롤라인은 일거수일투족에 의미가 깃들어 있는 안무로 눈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켜버린다. 허투루 낭비하는 움직임이 하나도 없다. 리듬감이 있고 따라 부를 파트가 있는 초반부 인상을 강하게 남기며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몽환적인 중반부 곡에 생명을 불어넣고, 통속적인 ‘So Hot You’re Hurting My Feelings’에 더욱 힘을 싣는다. 기계체조와 같은 동작은 감정과 자유의 표현이 아니다. 혹독하게 갈고 닦음으로부터 자연스레 나오는, 본능을 흉내 내는 고도화된 이성이다.

무엇을 기대했는가에 따라 만족감이 달라질 무대였다. 넋 놓고 바라보거나, 팔짱 끼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이날 도쿄에서 그를 목격한 관객들의 비율은 반반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끝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성을 퍼부으며, 짧은 유년기를 보낸 도시로 귀환한 예술가에 경의를 표했다는 사실만큼은 같았다. 캐롤라인이여! 너로 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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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김도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