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잉글리쉬 쉽독 [American Ping Pong]

한 세대는 대개 앞선 세대의 결핍에서 태어난다.

올드 잉글리쉬 쉽독 [American Ping Pong]

한 세대는 대개 앞선 세대의 결핍에서 태어난다. 맨손으로 모든 걸 일군 산업화 세대에게 근면은 선택보다는 생존의 언어였고, 누구나 개천의 용이 되고자 펜을 쥐었던 86세대에게 노력은 달콤한 미래를 안겨줄 동아줄에 가까웠다. 적어도 흘린 땀이 어김없이 결과로 돌아왔던 만큼 그들이 물려줄 수 있던 유산이자 조언은 바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문장이었다.

이에 대한 후세의 응답은 조금 달랐다. 집단의 요구보다 개인의 개성에 집중하기 시작한 X세대의 낙관, 더 나아가 가파르게 높이 쌓인 사회의 기준들을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한 N포세대의 우화는 노력이라는 답으로 일관하던 어른들의 권력에 되받아치는 일격과도 같았다. 어쩌면 세대 간 불통은 서로 생각하는 득점의 정의가 달랐다는 점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올드 잉글리쉬 쉽독의 정규 2집 [American Ping Pong]은 가상의 한 탁구 경기를 다룬다. 전장에서 몸을 다쳐 선수의 꿈을 접은 채 나이가 들어버린 미국인과 중국에서 건너온 어린 천재와의 시합. 노인은 관중 가운데 자신을 응원하는 쪽이 아무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끝내 미련을 지우지 못한 채 라켓을 쥔다. 이내 휘슬이 울린다.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은 자의 악착 같은 오기와 아직 한계를 모르는 순수한 가능성이 격돌한다.

밴드의 프론트맨 송그루는 과거 대기업 취업 과정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동료들을 밟고 올라서야 했던 기억, 그리고 관리자의 입장에서 실적이 부족한 직원을 평가해야 했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어른들이 수없이 강조한 노력으로 경쟁자를 이기고 올라온 대가는 달콤한 과실과는 조금 달랐다. 그저 버려지는 쪽에서 버리는 쪽으로 옮겨 앉았을 뿐, 애초에 경쟁터를 벗어날 수 없던 셈이다.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잡아가던 전작 [dude..]가 자신과의 고된 싸움을 닮은 볼링에 소재를 둔 것과 달리 본작이 지독하게 타자와 엮일 수밖에 없는 탁구를 소재로 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운드 역시 경기 양상을 닮았다. 짧고 강렬한 리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송그루와 이원주의 기타가 박진감을 부여하면, 빠른 속도감부터 차분한 숨고르기까지 원활하게 완급을 조절하는 오권진의 드럼, 그리고 신시사이저를 적소에 투입해 높낮이에 균형을 부여하는 김지운의 키보드가 합세한다. 마치 중계 화면 속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랠리를 보는 듯하다. 여기에 폭넓은 문화적 자양분이 더해진다.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과 곳곳의 오마주가 곡의 판세를 계속 뒤집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점수판처럼.

개회식과도 같은 경건한 전자음 뒤 경쾌하고 청량한 도입으로 시작을 알리는 'American Ping Pong'으로 서브가 시작된다. 세트로 비유하자면 초반은 탐색전이다. 지나친 경쟁 사회가 개인의 영역까지 침범한 나머지, 이제는 서로에게조차 적대적인 오늘날 청년의 자화상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악틱 몽키스의 타협 없는 강성의 연주에 뒤틀린 선율을 투입해 삐딱함을 강조한 'Tom is the King Of Logic'은 각자 논리를 설파하며 자신이 옳다 외치는 커뮤니티 광경을 닮았다. 초기 검정치마의 올망졸망한 파워 팝 사운드를 오마주한 'Goonies'는 실속 없이 허세만 가득한 인물들을 비꼬면서, 결국 자신도 피장파장임을 실토한다.

중반부터는 실점의 원인이 바뀌는데, 무너지는 쪽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다. 스트록스의 건조한 뉴욕 분위기와 반복적인 리프를 복각한 'I'm Not Wrong'과 'Holiday'는 불신과 죄책감으로 허우적대는 가운데 방황하며 위로의 손길을 갈구하는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을 담는다. 조이 디비전의 신스 터치를 가져온 'Beans'는 흥겨운 선율 가운데 나약함을 고백하는 상반된 노랫말을 배치해 처연한 춤사위를 그려낸다. 뉴트럴 밀크 호텔의 닦이지 않는 로파이 질감과 노이즈를 입힌 'Butcher Boy'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현실의 이야기다.

복잡함을 내려놓고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Complexity is not Mine'은 타임아웃을 부른 뒤 다시 코트로 돌아서는 과정처럼 들린다. 초연해진 보컬 사이로 뒤틀리는 변주를 조금씩 더해 마지막 랠리로 향한다. 이윽고 '404 (Paul)'가 마지막 서브를 올린다. 정적인 초반부는 승자가 확정되는 순간의 고요, 장내가 한 박자 멈추는 지점에 가깝다. 이후 하나둘 모여드는 악기가 뒤늦게 밀려오는 감정을 대신하고, 끝에 이르러 찬란하게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경기는 끝났다.

우리는 삶이라는 커다란 탁구대 위에 올라 도전하는 위치에 서기도, 혹은 수성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기도 한다. [American Ping Pong]의 몫은 그저 직시하는 일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느낀 무력, 누군가를 꺾어야 한다는 죄책감과 끊임없이 자리를 위협받는 불안을 숨기지 않고 나열한다.

그래서 이 앨범은 애처롭고 정직하다. 모든 승리가 아름답지만은 않고 모든 패배가 우습지만은 않듯, 올드 잉글리쉬 쉽독은 그들이 결코 놓지 않고자 했던 '필사적 태도', 그 투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를 택한다. 미국 노인과 중국 소년의 치열한 결투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 그들이 원했던 것은 라켓을 내려놓은 채 수고했다며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이 리뷰는 장준환 평론가의 올드 잉글리쉬 쉽독 [American Ping Pong] 앨범 소개글로 음원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