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내한공연

잔광을 가지고 놀다.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내한공연

최근 몇 년간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제인 쇼언브런의 '빛나는 TV를 보았다'를 반드시 이야기한다.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나 엑스 파일 같은 1990년대 미국 드라마의 기억을 뒤섞어 만든 가상의 TV 쇼 ‘더 핑크 오페이그(The Pink Opague)’를 중심으로 소년과 소녀의 시간을 뒤틀어 버리는 호러 영화다. 당시 어떤 매체의 평론가 이 영화의 핵심이 제목에 있다고 리뷰를 썼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들은 TV를 본 것이 아니라, TV의 잔광을 본 것이라고, 이야기와 캐릭터는 사라지고, 콘텐츠가 남긴 잔여물만 남아 흐릿하게 우리의 가능성을 마비시키고 있노라고.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내한 공연에서 비주얼 파트너 프리카 텟이 선보이는 인형극을 보며 다시 한번 그 영화의 생각이 났다. 미니어처 브라운관에 OPN이 포착한 시대의 잔광과 잔여물의 흔적을 띄워 보내고, 그 영상을 다시 한 번 휴대폰으로 촬영해 실시간으로 거대한 1975 시어터의 전면 스크린에 투영하는 인형극이었다. 기호의 기호, 복제의 복제. 잊힌 과거의 소리를 악기와 촬영 장비로 포착해서 내보내는 비선형적인 경험. OPN의 음악이 원래 그러하거니와, 90분 정도의 러닝 타임이 짧게 느껴진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간을 뒤섞고 의식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는 불완전한 강신술이었다.

그런 공연이어서인지 곡 중간중간 다니엘의 멘트와 정격적인 시작과 끝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도 받았다. 요란하게 관객을 비추는 강렬한 레이저 조명도 계속 깨어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고. 압권은 정규 공연을 끝내고 앵콜 무대를 하러 올라온 다니엘의 멘트였다. “여러분, 이거 영화 아니라 공연이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OPN과 프리카 텟은 그렇게 잔광에 구속되는 것을 거부했다. 잔광을 가지고 놀았다.

  • 씨피카 김도언 김재호의 오프닝 무대 기가 막혔다. 이렇게 트리오로 활동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름다운 VJ도 넋 놓고 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