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Y

V8 [V8]

취향의 샘터에서 소통의 물꼬를 트다

V8 [V8]

무대 위 정해진 동선을 이탈한 두 사람이 이번에는 섭외 전화를 직접 돌린다. 오래전 블랙핑크를 논하며 '애프터 케이팝(After K-pop)'의 도래를 짚었듯, 아이돌의 역할 변화는 이미 진행형의 역사다. 그 변화의 종착지에 놓인 과제가 있다면 단연 주체성. 타의가 요구한 자율의 흉내가 아닌, 자신의 취향과 관점에서 길어 올린 주체성 말이다. 세븐틴의 디에잇과 버논이 결성한 유닛 V8은 그 마지막 관문을 향한 도전장이다.

프로덕션 팀이 전담하던 기획과 섭외의 영역을 플레이어가 큐레이터로서 직접 관할했다는 사실부터가 사건이다. 크레딧이 곧 증명이다. 퍼렐 윌리엄스와 메카톡, 앨리스 롱위 가오, 100 겍스의 딜런 브래디까지 해외의 첨단을 부르고, 국내에서는 키라라, 나우아임영의 프로듀서 밀레니엄, 에피의 킴제이, 식케이와 제이민의 배드트리를 초대했다. 방탄소년단의 '아리랑'을 상회하는 진용. 불가능해 보이는 조합을 성사시킨 것이 세븐틴이라는 거대 타이틀의 후광임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명함만으로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결국 이 명단을 완성한 것은 두 플레이어의 진심 어린 접근 방식이다.

앨범의 골자는 전자음악 컬렉션이다. 보도자료가 내세운 하이퍼팝이라는 수식은 다소 의문이지만, 전반적인 완성도는 준수한 편. 중국어와 영어, 한국어가 혼재하는 트랙 배치는 두 사람의 정체성과 성장 서사를 자연스럽게 실어 나른다. 흥미로운 지점은 프로듀서와 플레이어 사이의 역학이다. 트랙마다 참여 프로듀서의 성향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가운데, 어떤 이는 자기 색을 과감히 덜어내 두 보컬이 뛰어놀 무대를 깔아주는 데 집중한다. 문제는 그 배려가 지나쳐 색채 자체가 소거된 트랙도 존재한다는 것. 그 위를 노니는 디에잇과 버논의 목소리 역시 아직은 정형화된 케이팝 문법에 머물러 있어, 낯선 사운드를 완벽히 체화한 단계라 보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해답은 프로듀서의 색이 가장 강렬한 순간에 있다. 키라라와 함께한 'Mia'가 그렇다. 서로의 강점이 또렷이 도드라지면서도 페어 플레이처럼, 한 팀처럼 움직이고 기능하는 트랙이다. '어떤 곡을 만들 것인가'를 상정하고 출발한 협업이 아니라,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묻는 긴 대화가 먼저 있었고, 함께 호흡하는 법을 익힌 뒤에야 녹음 버튼을 눌렀으리라는 확신이다.

앨범 단위의 유기성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다. 현시점의 V8은 완결된 작품이라기보다 디에잇과 버논이 결탁해 각자의 성장 서사와 의지를 담아낸 옴니버스 컬렉션에 가깝다. 대신 그 미완이 기대를 낳는다. 마음 맞는 이들과의 교류가 명확한 기획과 사운드 위에서 '즐기는' 단계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V8]은 개방을 표방하면서도 폐쇄성이 공고하던 케이팝 씬에 트인 유의미한 물꼬처럼 들린다. 오랜 시간 세븐틴을 지지해온 팬덤은 갑작스레 마련된 이 상견례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건조한 콜라보 보도자료 한 줄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대화하고 취향을 나누는 생태계. V8이 열어젖힌 수문 너머로 보고 싶은 광경은 바로 그것이다. - 장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