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희준 [선모]

상상 속의 악에 사로잡힌 나에게 네 말은 선이 아니었다.

우희준 [선모]

작년부터 굉장히 열심히 달리시고 있습니다. 작년 4월 정규 1집으로 데뷔한 뒤 그 해에 EP를 두 장 더 발매하시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과 '넓은 집'으로 최우수 얼터너티브 록 노래까지 챙기면서 2관왕을 하셨죠. 그때 혜택인 한대음 '뮤직 커넥트'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을 받아 또 한 장의 앨범을 가져왔습니다. 올해의 신인 후보에 오른 팀들 중에서 선정위원들이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뮤지션한테 카카오창작재단과 멜론이 제작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에요. 사실 예산이 들어온만큼 더욱 볼륨을 키울 수도 있었는데, 이번 [선모]의 경우에는 전작들과 성질이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인스트루멘털 앨범스럽기도 하고, 보다 조용한 분위기를 지향하고,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소리를 시도하고 있어요.

콘트라베이스를 기반으로 정적인 합주가 이어지고, 보컬이 들어가지 않는 연주곡, 즉 침묵을 무기로 활용하면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듯 전개되는 방식입니다. 이건 제 인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밝힌 부분이기도 한데, 말로 다 전하기 힘든 큰 고통과 감정을 소리로 전달하려고 인스트루멘털 트랙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였다고 해요. 또한 카메라 셔터음이 들어간다든지 비언어성과 우연성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라이브 실황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실제로 우희준의 핵심이던 노랫말과 독창적인 보컬이 거의 보이지 않고,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목소리는 텍스처로 사용되는 감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사라' 같은 트랙이 그런데, 목소리가 악기 뒤로 배치되는데 이 지점에서 2015년 [공중도덕] 앨범이 떠올랐습니다. 공중도둑으로 이름 바꾸기 전 그 시절.

또한 콘셉트 앨범으로 보이는게 이제 앨범 소개 문구인데, '선모'라는 인물과 화자가 등장하는 구조고, 서로를 이제 철학자와 시인으로 비유를 들고, 각각 베유와 사포로 트랙에서 소개되기도 합니다. 화자가 철학자, 즉 시몬 베유고, 선모가 시인, 즉 사포예요. 시와 철학, 선과 악, 말과 침묵의 관계성에 집중하고 있고, 동시에 시몬 베유의 유명한 문구인 '상상 속의 악은 매혹적이고 다채롭지만 실재하는 악은 지루하고 단조롭다, 반대로 상상 속의 선은 따분하지만 실재하는 선은 늘 새롭다'를 응용해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죠. 소개글의 "상상 속의 악에 사로잡힌 나에게 네 말은 선이 아니었다"가 바로 그 문장을 받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앨범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는 작품이고, '선모'라는 이름은 우희준이 생전에 그 친구와 함께 쓰던 릴레이 소설 속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그러니까 애도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둘이 함께 짓던 허구의 세계인 겁니다. '소설적인 진실'이 라이브와 스튜디오 두 버전으로 들어간 이유도, 소개글이 "철학자와 시인의 서신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표현한 것도 여기서 설명이 되죠. 서신이라는 게 비유가 아니라 릴레이 소설의 형식 그 자체일 수 있는 겁니다. 참고로 타이틀곡은 '이해되지 않는 부탁도 들어주세요'입니다.

마찰에서 감각을 끌어내는 비유법을 자주 드는데, '치찰음' '아픔' '흡착' '날카로움' 등의 단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어떻게 보면 시인 사포의 이름을 말그대로 샌드페이퍼로 해석할수도 있구요. 전작의 ‘모래알’ 키워드가 떠오르는 지점. 개인적으로 우희준의 음악 세계가 아닌, 음악을 매개로 한 우희준의 세계와 시선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 같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그 비법을 볼 수 있던 모멘트였습니다. 프로젝트성 작품 같아보이지만,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꼭 우희준이 다루고 있는 소재, 가사에 치중하지 않아도 그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자유로운지를 알게하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간은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편견을 한 꺼풀 벗겨내는 지점이었어요. - 장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