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 속에서, 전장을 마주하다
잠비나이 '적벽'- 2025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전통예술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적벽가'는 독특한 마당이다. 삼국지연의의 명실상부한 하이라이트 '적벽대전'를 다루는 작품은 그 공격적이고 무거운 성격으로 인해 남성 소리꾼 중심으로 사사되었으며, 때문에 다섯 마당 가운데 가장 덜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흥미로운 지점은 이 극이 '군사설움타령'과 '적벽강 싸움' 대목 처럼 이름 모를 병사들의 공포와 죽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수하의 죽은 군사 모도 뒤둥그러져 적벽강이 뻑뻑
일등 명장이 쓸 데가 없고 날랜 장수가 무용이로구나..."
- '군사설움타령' 중
제갈량, 조자룡, 주유, 조조와 같은 간웅(奸雄)들의 이야기보다는 전장에 동원된 이름 모를 병사들의 공포와 죽음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적벽가'의 오늘날 재해석은 자연히 반전(反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잠비나이의 이일우는 인터뷰에서 "작업을 할수록 주목하게 된 건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이 죽어간 민중들이었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자국우선주의의 횡행과 '공습'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참상이 옅어지는 오늘날에, 해학과 풍자를 노래하는 소리꾼은 파괴적인 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종군 기자이자 섬뜩한 굉음을 내뿜으며 전장을 휘젓는 한 대의 드론으로 전환된다. (이 리뷰를 작성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습이 시작됐다.)

2월 27일 아르코예술극장에서의 '적벽'은 크게 세 겹의 전환이 있었다. 우선 말한 대로 시선의 전환이다. 조조, 제갈량, 주유와 같은 영웅들의 서사에서 전쟁에서 희생되는 민초들의 공포를 "애틋함과 무서움으로" 담아낸다. 소리꾼 오단해의 해설은 광포한 기타와 광기 어린 국악 현악기의 소리, 전장을 뒤흔드는 북소리 속에 명료한 대본을 읊기보다 애처롭게 전장을 중계하는 비탄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마치 1915년 테일러 홈즈가 낭송한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군화(Boots)'를 콘셉트 트레일러 필름으로 삼아 공포감을 극대화했던 영화 '28년 후'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전복은 1962년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War Requiem)'의 구조를 계승하는 시도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파괴된 코번트리 대성당의 재봉헌식을 위해 만들어진 이 극은 라틴어 진혼미사 위에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일주일을 앞두고 전사한 전장의 시인 윌프레드 오웬의 반전(反戰) 시를 겹쳐 올렸다. 장엄한 의례 아래 목적도, 이름도 없이 참호 속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겹치며 전쟁은 영웅과 장군의 것이 아닌 전사(戰死)자들의 것이 된다.
잠비나이의 '적벽'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그 방식은 멜로디와 리듬에서 질감으로의 전환이다. 제너레이트 인터뷰에서 해금을 연주하는 김보미는 "선율을 따라가기보다 적벽대전이라는 전쟁의 풍경 그 자체를 사운드로 구현해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판소리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는 필시 메시지, 소리꾼의 가창, 고수의 박자에 호흡을 맞추게 된다. 잠비나이는 이를 거부했다. 판소리 선율에 서양의 마이너 코드를 입히는 방식의 퓨전이 아니라, 두터운 소리의 벽을 세워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을 방불케 하는 70분은 매우 과격하게 판소리를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이일우는 연주자들에게 '지금 화살이 날아와 땅에 박히는 소리를 내줘', '병사가 칼로 적을 찌르는 느낌을 살려줘',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이야' 등 연극적 지시를 내린다. 멤버들은 각자 3박, 5박, 6박의 서로 다른 박자를 세며 불규칙한 폴리리듬을 연주한다. 전쟁터에서 불규칙하게 날아다니는 화살과 군인들의 처절한 발걸음이 들린다. 서로 다른 호흡이 엉키며 소리만으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가 복수의 기타와 현악기 레이어를 쌓아 사회의 혼돈을 음향으로 구축하는 포스트 록의 충격이 '적벽'에 있었다고 할까. 그러나 해금과 거문고라는 독특한 국악기 소리가 쏘아 올리는 날카로운 소리의 화살은 잠비나이의 재해석을 어떤 음악 장르의 형태로 가둘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를 객석에서 관람하는 관객 경험의 전환이다. 거문고 연주자 심은용은 "머리로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전쟁터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감각적인 경험"을 느끼라고 이야기한다. 밴드가 연주로 깔아 놓은 전장의 풍경 위에서오단해는 조조가 되었다가, 제갈량이 되었다가, 때로는 병풍처럼 배경음의 역할을 수행하며 강렬한 감각을 쏘아 붙인다. '전쟁 레퀴엠'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깔아 놓은 배경 위에 테너 독창자가 목소리로 적막을 깨우는 것처럼, 잠비나이의 굉음과 오단해의 소리가 흉포하고 잔인한 기억 속으로 관객을 몰아 넣는다.
그렇게 발을 디딘 풍경은 생지옥이다. 드론의 굉음처럼 집요하게 따라붙는 해금의 고음, 지면을 울리는 폭격처럼 진동하는 거문고의 저음, 점진적인 상승과 폭발적인 크레센도로 격렬해지는 전투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고요해지는 순간. "혼란 끝에 모든 소리가 합쳐질 때 느껴지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언급한 드러머 최재혁의 묘사가 과장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전장의 소음이 한 순간 정적으로 바뀔 때,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죽은 자들은 말이 없고 산 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공허.

'적벽'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시대를 옮겨가며 계속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2026년 하반기 이 공연의 '편집본'이 앨범으로 출시될 때에는 조금이라도 총성이 멎었을까.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캄캄한 어둠의 적막을 꿰뚫으며 쏟아지는 미사일의 비, 이를 막기 위해 다시 쏘아 올려지는 요격의 불꽃. '적벽'의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에도 이와 같은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그것은 죽음을 만드는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죽은 자들이 한과 미련을 다 놓을 틈도 없이 거대한 운명의 부름을 받아, 터덜터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흔적이었다.
전쟁에서는 물러날 길이 없다. (There's no discharge in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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