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BE AMERICA] #4 이혜원 VP, Merchandising and Strategic Planning
K팝 팬 경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이혜원 VP.
K팝의 영향력이 음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아티스트와 팬을 잇는 머천다이즈(MD)와 팝업 스토어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제 MD는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팬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자리 잡았다. 미국 패션 업계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하이브 아메리카의 MD 사업을 이끌며 K팝 팬 경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이혜원 VP, Merchandising and Strategic Planning를 만나, 세계 최대 음악 시장에서 K팝의 아이덴티티를 상품과 공간으로 구현해내는 그의 도전과 노력에 대해 들었다.
최근 르세라핌의 북미 투어 팝업 스토어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셨습니다. 아마존과의 협업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어떤 행사였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르세라핌의 첫 북미 투어를 기념하여 아마존과 협업한 팝업 스토어를 LA와 시애틀에서 진행했습니다. 이번 팝업의 가장 큰 특징은 아마존의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기술을 도입하여 팬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팬 이벤트에서 가장 큰 고충 중 하나인 긴 결제 대기 줄을 없애고, 별도로 상품을 스캔 할 필요없이 나갈 때 기계가 자동으로 상품을 인식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적용했죠. 이는 단순히 시간을 절약하는 편의성 극대화를 넘어, 르세라핌이 추구하는 당당하고 진취적인 이미지와 기술 혁신을 결합하여 팬들에게 '미래적인 경험'을 선사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또한, 투어 머치와 팝업 한정 MD를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팬들이 투어 현장의 뜨거운 감동과 여운을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어가고,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경험 중심'의 공간으로 기획했습니다.
말씀하신 '팬 경험'은 하이브 아메리카 팝업 스토어의 핵심 철학인 것 같습니다. 어떤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시나요?
팝업 스토어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치는 단연 '팬 경험'입니다. 미국은 한국만큼 팝업 스토어나 관련 이벤트가 흔치 않기 때문에, 이러한 오프라인 공간은 팬들이 아티스트의 서사와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상품 판매를 주목적으로 두기보다는, 팬들이 팝업에 와서 아티스트의 음악과 비주얼 콘셉트를 현실에 구현한 공간을 즐기고, 다른 팬들과 교류하며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는 데 집중합니다. 달라스, 시애틀 등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팬들이 팝업에서 만나 함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그 즐겁고 특별한 경험을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상품 구매로 이어지면서, 경험과 커머스가 시너지를 내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팝업 한정 티셔츠 한 장이 단순한 옷이 아니라, '그 축제에 내가 참여했다'는 증표이자 팬덤 내에서의 자부심이 되는 셈이죠. 이는 팬들 사이에서 또 다른 대화의 소재가 되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2차적인 관심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하이브 아메리카에는 2년 전 합류하셨고, 이전에는 패션 업계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엔터 업계는 처음입니다. 이전에는 미국에서 매스 마켓부터 럭셔리 브랜드까지 패션 업계 전반을 경험하며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과 소비자 심리 분석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소비자의 복잡한 패턴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을 수 있었죠. 평소 음악을 정말 좋아했고, 미국에 살면서 K팝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것을 보며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가진 미국 시장에 대한 전문성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전략 수립 능력을, 제가 열정을 느끼는 K팝 산업에 접목하여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패션 브랜드가 시즌별 컬렉션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듯, K팝 아티스트가 앨범을 통해 하나의 유기적인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제게는 무척 흥미롭고 전략적으로도 매력적인 영역으로 느껴졌습니다.
패션 업계라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K팝의 성장은 어땠나요?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특히 패션 업계 리더십 사이에서 K팝의 막강한 영향력은 이미 주요 비즈니스 화두였습니다. 특정 K팝 아티스트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거나 앰버서더로 활동하면, 해당 상품 라인이 순식간에 품절되는 현상을 데이터를 통해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기를 넘어, K팝 아티스트가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충성도 높은 팬덤을 움직이는, 대체 불가능한 '트렌드 세터'임을 증명하는 것이었죠.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K팝이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산업적 현상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K팝 아티스트의 스타일이 글로벌 패션 트렌드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고,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협업을 제안하는 상황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아티스트의 공항 패션 하나하나가 주요 패션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MD는 아티스트와 팬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한국과 미국 시장의 MD 소비 문화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보시나요?
본질적으로 MD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확장하고 팬과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점은 양국 모두 동일합니다. 하지만 소비의 목적과 가치를 두는 지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보입니다. 한국 팬들은 포토카드나 한정판 굿즈처럼 '소장 가치'와 '수집'이라는 컬렉터의 관점에서 MD를 소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 미국 팬들은 MD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여깁니다. 후드티나 모자처럼 일상생활에서 직접 사용하며 자신의 취향과 팬심을 표현하는 실용적인 상품을 선호하죠. 콘서트에서 구매한 티셔츠를 평상시에 입는 행위를 통해 '나는 이 아티스트의 팬이다'라는 소속감을 드러내고, 같은 옷을 입은 다른 팬들과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상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인의 방향성과 품목 선정에까지 큰 영향을 미칩니다.
K팝 MD를 미국 현지에서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요? 현지 파트너들과의 소통은 어떤가요?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K팝 MD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더 체계적이고 수월할 때가 많습니다. K팝은 기획 단계부터 아티스트의 정체성, 고유한 서사, 앨범별 비주얼 콘셉트 등이 매우 명확하게 체계화 되어 있습니다. 이는 MD 상품에 일관된 스토리를 부여하는 데 강력한 기반이 됩니다. 덕분에 저희가 현지 파트너사에게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크리에이티브 가이드라인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매우 효율적입니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 축적된 K팝의 체계적인 기획 및 제작 노하우가 미국 현지에서도 강력한 비즈니스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파트너사들 역시 이러한 체계성을 높이 평가하며, K팝의 성공 방식에 대해 배우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합니다.
K팝 팬덤 문화가 미국 팝 스타들의 팬덤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현장에서 이를 체감하시나요?
K팝 팬덤 문화가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팝스타의 콘서트에서 팬들끼리 우정 팔찌를 교환하는 문화가 큰 화제가 되었는데, 사실 이러한 팬들 간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교류와 나눔은 K팝 팬덤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문화 중 하나입니다. 팬들이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강력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2차 창작이나 오프라인 모임, 심지어 팬덤 차원의 기부 활동 등을 통해 팬덤 문화를 스스로 확장해나가는 모습은 이제 미국 팝 시장에서도 성공적인 팬덤을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핵심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MD 상품 역시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이브 아메리카의 MD 및 팝업 사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목표는 '경험의 확장'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팝업 스토어가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데, 미국은 워낙 넓기 때문에 수많은 지방의 팬들이 이런 특별한 경험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리테일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 전역의 더 많은 팬들이 저희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대형 유통 채널에 저희가 기획한 단독 섹션을 마련하거나,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옴니채널(Omni-Channel) 전략으로 팬들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언제 어디서든 아티스트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저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K팝 팬이 아니더라도 흥미를 느낄 만한 매력적인 공간과 상품을 통해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는 교두보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거의 매일 보람을 느낍니다. 팝업이든, 투어든, 위버스샵 론칭이든, 저희의 노력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는 점이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팬들이 아티스트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기에, 저희는 단 하나의 상품도 허투루 만들지 않습니다.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상품 하나하나가 팬들의 일상에 행복한 순간으로 녹아들고, 아티스트와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큰 책임감과 함께 무한한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팝업 현장에서 저희가 기획한 제품을 즐겨주시는 팬들을 바라볼 때마다 특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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